전력주제 [가면]

 

 

 

 

 

 

삼 일째 머리를 감지 못했다. 집은 둘째치고 목욕탕은 좀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울분을 토하며 가려운 머리를 긁적이자 반장님은 '증거 하나 찾아오면 보내줄게.' 하며 속 긁는 소리를 해댔다. 오이카와는 명치 저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분노를 꾹꾹 눌러 삼키며 벌써 몇십 번 들춰본 사건자료를 뒤적거렸다. 피해자 25세 남성 사토 미사키. 21일 밤에 실종되어 이튿날 자정에 발견... 목격자, 용의자, 별다른 증거 없음. 담배를 물고 시퍼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오이카와 옆으로 쿠로오가 커피를 들이켜며 지나가다 멈춰 섰다. 그러다가 예쁜 얼굴 망가진다. 그 목소리에는 걱정 보다는 농락하는 느낌이 가득했던 터라 오이카와는 쿠로오를 휙 째려보았다. 그리고 여기 금연이야. 그가 덧붙인 말에 오이카와가 담배를 내던지며 '으아아아' 소리를 지르자 쿠로오는 커피를 마저 마시며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선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듣고 싶지 않거든요?
앙칼지네, 오이카와. 들어봐. 너한테 도움될 수도 있는 얘기니까.

 


쿠로오는 귀를 막으며 저를 무시하는 오이카와를 더러 본체만체 하더니 혼자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에 (사실은 그렇게 옛날도 아니지만) 거짓말하는 사람을 아주 잘 잡아내는 사람이 살았대요. 누가 아주 미묘하고 작은 거짓말이라도 했다 치면 바로 알아챘다고 합니다. 그게 어찌나 정확했던지. 그래서 정의를 지키는 우리 경찰은 그 사람의 도움을 가끔 받고는 했죠. 용의자도, 증거도 없는 이상한 사건을 맞닥뜨릴 때마다 그 사람을 찾아가서 증언한 사람이나 목격자의 진술 테이프를 보여주면 그 즉시 간파했대요. 대단하죠?


그 말투 뭐에요? 좀 싫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사라졌대요. 죽었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경찰은 그 사람을 찾으려고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야기 끝-
그래서 그 얘기를 해주는 이유가 뭡니까?
둘째가라면 서러울 프로파일러 오이카와 씨. 네가 찾아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스가와라 코우시를.

 

 


흥미를 느낀 것은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그런 시시한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일말의 희망을 걸어본다는 마음으로 그 '스가와라 코우시'라는 사람의 인상착의와 나이, 특징을 캐물었다. 쿠로오 자신도 스가와라를 본 적이 없어서 정확하게는 모른다고 했다. 지금까지 선배들에게 전해져온 전설 같은 이야기 속의 스가와라 코우시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 이외에는 쿠로오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 오이카와는 또다시 미궁에 빠진 느낌이었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거짓말하는 걸 잘 파악하는 사람. 보자마자 사람을 간파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 그렇다면, 자신을 숨기는 데 집중할 것 같지는 않았다. 거짓말을 쉽게 알아챈다면, 반대로 거짓말하는 것도 능숙할 테니까. 자신의 정체를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거다. 경찰은 모두 그가 꼭꼭 숨어서 살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의외로 그 사람은 꽤 가까이. 그리고 그다지 깊지 않은 곳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

 

 

 


며칠 만에 하는 목욕은 마시고 있는 바나나 우유보다도 달콤했다. 오이카와는 금세 바닥을 드러낸 우유갑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지며 다시 모니터에 눈을 고정시켰다. 스가와라 코우시의 사진은 없었지만, 대충 조합한 정보로 뭉뚱그린 그 사람의 느낌을 머릿속에 입력시켰다. 한창 바쁜데 소리 없이 다가온 쿠로오가 별안간에 오이카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연극 보러 가지 않을래?
지금 저 놀리십니까? 새빠져라 일하는 거 안 보여요?
싫음 말어라-


오이카와가 있는 대로 짜증을 내며 말하자 쿠로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책상 위에 연극 표를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가면산장 살인사건.' 제목만 봐도 내용을 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조잡한 느낌의 연극일게 뻔했다. 오이카와는 그래도 선배의 성의를 생각해서 억지로 쿠로오에게 물었다.


갑자기 웬 연극 표예요?
친구가 줬어. 걔가 여기 소품 제작 맡았거든.
선배 주위에 여자 많은데 왜 저한테..
너 그 사건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거 같아서. 기분전환이라도 시켜줄까 그랬지.


감동은 코딱지만큼도 없었지만 어쨌든 챙김 받는 기분이라 오이카와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평소에는 선배는커녕 애새끼같이 굴더니만. 웬일이래. 씩 웃어 보이는 쿠로오 답지 않은 모습에 오이카와는 떫은 감이라도 먹은 양 입안이 씁쓸했지만, 결국에는 같이 가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연극이 시작하고 30분 만에 오이카와는 범인이 누군지 알아채고 흥미가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연극보다는 소품에 정신이 팔려서 보던 중, 산장 세트장 위쪽에 걸린 가면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갈색의 나무로 만들어진 심플한 가면을 보다 보니 뭔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가면의 얼굴에서 오이카와는 갑자기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선배. 선배가 말한 그 친구가 누구예요? 이 연극 표 준 사람.
왜? 내 이웃이야. 가면 만드는 일하는.


연극이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곯아떨어졌던 쿠로오를 흔들어 깨워 묻자 쿠로오는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 잠에 빠졌다. 가면 만드는 사람. 오이카와는 자기가 생각한 프로파일링과 딱 맞는 직업이란 걸 깨달았다. 미스테리하고, 예술적인 직업. 자신을 모두 내보이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불법이나 음지에서 하는 일은 아닌. 숨어서 살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찾아다니는 경찰 바로 옆에서 살만큼 배짱이 큰 사람.


선배. 그 사람, 만나게 해주세요.

 

 

 


쿠로오가 알려준 그 사람의 작업실은 극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오이카와는 괜히 긴장되는 턱에 땀이 찬 손바닥을 소매에 비비며 가면 작업실 문을 열었다. 스즈키 미유. 스즈키라는 흔한 성을 쓰지만 이름은 自由. 미유라고 읽고 자유라는 뜻을 가진 특이한 이름을 쓰는 것도 예술적인 느낌이 있었다. 한 발짝 들어간 작업실에서는 강한 나무 냄새가 났다.


작업실 안쪽에서 그가 있었다. 스즈키 미유. 아니, 스가와라 코우시. 노르스름한 빛 아래에서 가면을 제작하던 스가와라가 고개를 치켜들었고, 오이카와는 순간 숨을 쉬는 것을 잊어버렸다. 쿠로오가 설명했던 스가와라의 모습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얼굴이었다. 쿠로오 선배는 대체 왜 몰랐을까? 오이카와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어쩐 일이세요? 그렇게 묻는 그의 목소리가 달콤했다.

 


스가와라 코우시 씨, 맞죠?


전혀 당황한 기색도 없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스가와라는 매만지던 가면을 내려놓고 날카로운 칼을 한 손에 쥐었다. 오이카와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서둘러 두 손을 내밀었다.


오이카와 토오루입니다. 쿠로오 테츠로 경위의 후배예요.
오이카와 씨. 어쩐 일로?


다시 묻는 스가와라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오이카와는 그의 얼굴에서 약간의 긴장함을 읽은 것만 같았다.

 


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세요. 그저 도움을 받고 싶은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오이카와는 가방을 열어 여태까지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았던 사건 파일을 내밀었다. 미제 사건입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고, 감이 안 잡혀요. 스가와라 씨라면 점쟁이보다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찾아왔어요. 스가와라 씨도 모르겠다고 하면, 정말 점쟁이를 찾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오이카와는 긴장감을 낮추려 농담하듯 가볍게 말했지만, 스가와라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 이제 경찰 돕지 않기로 했어요. 돌아가 주세요.
왜죠?
경찰이 싫어졌습니다. 도움을 줘도 고맙다는 말도 처음뿐이고. 나중에는 당연하단 식으로 내게 일을 부탁해왔어요. 사건을 해결해줘도 나는 얻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거짓말.
뭐라구요?
경찰이 싫어졌다는 거. 거짓말이죠?
...왜 그렇게 생각하죠?
스가와라 씨는 거짓말을 잘 꿰뚫어본다고 했죠? 나도 그런 편이거든요.
그것 참 재미있네요.
경찰이 싫어진 게 아닙니다. 당신은 분명 무슨 계기로 인해 피신해서 살고 있는거예요.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거래할래요?

 


스가와라는 다시 가면을 들어 나무를 조금씩 파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생뚱맞은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삼켰다.


난 그럴 시간이 없는데요.
내가 왜 정체를 숨기고, 이름까지 바꾸고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아맞힌다면. 경찰을, 아니. 오이카와씨를 돕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나는 도와줄 생각이 없으니까.


사건 파일을 도로 내미는 스가와라의 손에서 파일을 받아 든 오이카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쉽게 해결될 거라곤 생각도 안 했다. 오이카와는 작업실을 나서기 전, 문 바로 앞에 멈춰 서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가면을 두 손에 꼭 쥔 스가와라가 오이카와를 쳐다보고 있었다.


캣치미이프유캔 이란 영화 봤어요?
아아. 봤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멋있게 나와서 좋아해요.
프랭크는 거짓말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 사기만 치고 살다가, 나중에 경찰을 돕게 되죠? 난 당신이 다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
꿈이 크네요, 당신.
꿈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아는 거고.

 

 

 

 

*

 

 

 

 

오이카와에게 이제 사건은 뒷전이고, 오직 스가와라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었다. 쿠로오에게 도움을 청할까 생각했다가도 자신의 친구에게 속여져왔단 걸 알게 되면 쿠로오가 상처받을까 봐 (그 인간이 상처를 받는 게 가능하기나 하다면)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오이카와는 밤새 자료실에서 스가와라가 경찰에게 협력한 사건 자료를 조사했다. 그러다 찾은 스가와라의 마지막 사건이 눈에 띄었다.


살인사건이었다. 범인을 코앞까지 쫓아갔다가 놓쳤는데, 마치 증발한 것처럼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는 곳에서 아예 사라졌다고 한다. 분명히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해서 스가와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용의자와 목격자, 그리고 사건을 조사한 형사들을 조사하던 중 스가와라는 홀연히 모습을 감춰버린 것이다. 그 사건은 아직까지 미제로 남아있었다.

 


살해당한 것은 20대 남자.
거기까지 읽은 오이카와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자료를 몽땅 떨어트려 버렸다.

 


알겠다. 스가와라가 모습을 감춘 이유를.

 

 

 

 

*

 

 

 

 

다시 찾은 작업실은 밖에서 보았을 때 불이 꺼져있었지만, 잠금쇠가 걸려있지 않았는지 한번에 문이 열렸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나무 바닥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세게 깨물고 있었다.


오이카와 씨.


불이 켜진 곳에 서 있는 스가와라는 어째서일까. 무표정이었지만 오이카와의 눈에는 울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는 두 손에 만들다 만 가면을 들고 있었다. 가면의 눈은 웃고 있지만 입은 울고 있었다. 마치 희극과 비극을 대표하는 가면을 섞어놓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오이카와는 한 발짝 다가가다 말고 멈추었다.

 

 


선배. 역시 있었네요.


쿠로오는 빛이 들지 않는 곳에 있었다. 손에 들린 총은 스가와라가 아닌 오이카와를 향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문득 자신의 총을 홀스터에 꽂아두었단 걸 깨닫고는 얼른 몸을 뒤적거렸지만, 어째서인지 총이 잡히지 않았다. 집에 두고 왔나? 서랍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을 총을 생각하자 가슴이 갑갑해져 왔다. 프로파일러는 총이 필요 없다니까. 그렇게 말했던 언젠가의 자신을 질책하고 싶어졌다.

 


선배가 죽인 거죠? 이번 사토 미사키도.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세계 제일의 프로파일러, 오이카와 토오루네.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하나도 기분 안 좋아.


쿠로오는 큭큭 웃으며 총을 거뒀다. 어쨌든 총구를 마주하고 있는 것은 그다지 상쾌한 일이 아니라 오이카와는 그 자그마한 블랙홀 같은 구멍이 사라지자 안도의 숨을 뱉었다.


스가와라 씨. 대답하죠. 거래 아직 안 끝났잖아요.
듣고 있어요.


그때, 스가와라 씨는 살해당한 20대 남자의 범인이 쿠로오 선배인 걸 알게 되었어요. 선배가 거짓말했단 걸 눈치챘겠죠. 그런데 그걸 밝히지 않고, 자신이 사라지는 쪽을 선택했네요. 그건 역시 쿠로오 선배를 사랑해서인가? 아마 그런 이유겠죠. 뭐 어쨌든 경찰은 방향을 잃고 헤매기만 했고, 내부에 범인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겠죠. 그래서 아직까지 그 사건이 미제인 거고.
선배는 이번에 사토 미사키를 죽여놓고, 나한테 잘도 스가와라 씨에 대해서 말해줬네요. 내가 못 찾을 거라고 생각했나 본데. 날 너무 무시하지 마요. 스가와라 씨가 밝히지 않는다면 내가 밝혀서, 선배를 꼭 잡을 겁니다.

 


그건 네가 살아 돌아간다면 가능한 얘기겠지.
선배는 한가지 간과한 게 있어요. 스가와라 씨의 가면은 웃지도, 울지도 않고 있잖아요.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아요?
...
더이상 선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그거.

 


총소리가 울린 건 그 순간이었고, 나는 왜 내 홀스터에 꽂혀있어야 할 총이 스가와라 코우시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언제 빼갔어요? 손재주가 좋네요.
안 좋았으면 이거 못 만들죠.


스가와라는 기괴한 모습의 가면을 들쳐 보이고는 총을 오이카와에게 건넸다.


나는 또 사라져야겠네요.
그러는 게 좋겠어요.
찾으러 올 건가요?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스가와라 코우시는 다리에 총을 맞아 신음을 흘리는 쿠로오 옆에 가면을 내려놓고, 뒷문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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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산장 살인사건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에서 따왔고

미유는 스가 성우 이리노 미유에서 따온 이름 ;ㅅ;

 

 

Posted by haikyuu_re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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